방향을 찾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방향을 잃어봤는가?
2020년은 내 인생 터닝포인트의 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내 생각, 감정, 생활 등등 모든 면에 있어 큰 변화를 가져왔던 1년인 것 같다. 약 3년간 열정을 다해 다니던 회사에서의 퇴사 후 슬럼프, 그리고 떠난 두 번째 유럽여행, 돌아와서 마음을 다잡고 시작하게 된 웹/플랫폼 개발, 슬럼프를 이기게 해 준 취미 댄스팀생활, 서울에서 홀로 보낸 백수 시절, 스타트업 개발자로의 새로운 시작.
2020년을 되돌아보면 정서적으로 어지럽고 힘들고 어두웠던 시기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내 인생에서 아주 뜻깊고 결정적인 한 해였기 때문에, 나의 다사다난한 과거가 미래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회고록을 써본다.
1월
퇴사를 결심한 19년 하반기부터는 세상구경에 힘썼다.
근 몇 년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슬기로운 회사생활'의 틀에서 나보다 먼저 벗어나 세상으로 뛰쳐나간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주위 퇴사선배들은 뭐 하고 사는지 여기저기 연락도 많이 했던 것 같고, 그러다 우연히 이어진 인연들 덕분에 취미로 묻어두었던 영상크리에이터 모임에 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비트메이킹 작곡도 해보고, 댄스동호회 활동도 했다. (진짜 하고 싶은 건 다했다)
그렇게 배운 것은 세상에는 '자유로운 영혼' 체험을 실컷 해내고 나서 나에대해 알게 된 것은 '난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자유롭게 즐길 취미거리를 찾아 즐긴다고 한들... 워낙 워커홀릭 성향이라 마냥 즐겁기만 한 생활로는 내가 성장하는 느낌과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취미활동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일에 빠져 약간의 스트레스와 함께 무언가를 성사시켰을 때 느꼈던 쾌감과 뿌듯함보다 그 정도가 훨씬 덜했고, 쉽게 질려버리기 일쑤였다.(오히려 목적 없는 삶으로 인한 슬럼프로 이어졌다.) 이때 나는 내 행복을 위한 것도 좋지만,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을 생각하고 도전하면서 현실화시키기 위해 몰입하는 시간이 내 삶의 원동력이라는 걸 깨달았다.
과거 내 삶을 돌이켜 봤을 때, 내가 가장 몰입했던 기억은 2017년 어린 23살의 내가 미국 LA에서 비빔밥 푸드트럭을 운영하기 위해 밤낮을 지새우며 고민하고, 또 내가 만든 비빔밥을 사 먹는 미국인들을 보며 또 뿌듯함에 더 좋은 아이템을 고민하며 밤을 지새우던 날들이었다. 그 경험이 취업한 회사에서의 일과 다르게 느껴졌던 이유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 일하는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을 쏟아 일하는지의 차이었다. (이전 회사의 경우 후자인 경우가 많아 퇴사를 결심했었다.)
그래서 난 다시 개인사업에 관심을 기울였다. 11월부터 꾸준히 투자유치, 세무, 인사에 걸친 사업전반에 관련된 교육들을 찾아다녔다. 사실 그 현실적인 내용들이 궁금해서라기보단 교육에 오는 타 참석자들과 교류하며 요즘의 아이템들을 구경하는 재미에 빠져 살았다. 그러다 문득 현실을 마주했다. 난 이들과 달리 나만의 기술이 없다.
2월
누구보다 치열한 20대 초중반을 보내왔다고 자신하던 나에게 '기술이 없다' 라는 걸 깨닫는 것은 잔인한 일이었다. 심지어 공대출신으로 교환학생까지 다녀오고, 단과대 학술제에서 대상을 받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20살부터 매년 뭐 했냐고 물어본다면 망설임 없이 줄줄이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쉼 없이 달려왔는데, 그 시간들이 결국 그냥 목적 없이 달리며 열심히만 살았던 것으로 느껴져 회의감에 휩싸였다.
어느 책에선가 본 '열심히 노력하는 실패자' 가 바로 나를 일컫는 말 같았다.
물론 항상 주어진 상황에서의 목표를 찾으려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그 노력들이 가져다준 보상들도 당연히 있었지만 진짜 내가 원하는 일이라서 해낸 건지, 그저 시간을 열심히 채우기위해 달린건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학교 때는 그저 주위에서 '스펙왕'이라고 불러주는 게 만족스러웠고, 그 덕에 어린 나이에 대기업 취업에 성공했다는 그 자체로 만족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1~2월은 퇴직금으로 정말 잘 놀고먹었던 시절임에도, 나를 제대로 처음으로 마주하는 것 같아 정서적으로 힘들었다.
문득 지금까지 너무 바쁘게 살아오느라 가족들과의 시간을 못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엄마가 '스위스에 가보는 게 꿈이다'라는 말을 했고, 아빠랑 바로 유럽여행을 추진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얼마만의 여유일까 싶어서 비싼 비행기표 주고 가는 김에 '다시 한번 유럽에서 살아보자!'라고 생각이 들었고, 엄마랑 1달간 지낼 에어비앤비를 구해서 바로 예약했다. 과거 유럽에서 교환학생을 하던 시절 야간버스 타고 주말마다 혼자 이리저리 돌아다녀본 경험이 있어서 여행코스 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오랜만에 고향에 가는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여행준비를 하느라 잠시 복잡한 생각을 뒤로할 수 있기도 했다. 마음의 고향같이 느껴졌던 두 번째 유럽에서의 1달은 불타오르던 과거 대학생 때의 나를 떠오르게 하기도 했고 현재의 나를 마주하기에도 아주 적당한 시기와 기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기에도 너무 벅차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3월
유럽여행을 가기 전에 웹개발 국비지원교육 신청을 위해 내일 배움 카드와 취업성공패키지 신청을 미리 해놓았다. 사실 이때만 해도 내가 진짜 개발자가 되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시작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한참 슬럼프에 빠져있다가 내 목표인 1. 내 기술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일 2. 원인과 결과가 명확한 일의 접점이 개발이라고 생각해 바로 주위 관련직종에 있는 친구들에게 물어서 실행에 옮겼던 것 같다. 당시에는 '해보고 아니면 말자'라는 가벼운 생각이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이 선택은 정말 나에게 찰떡직업인 개발자를 알게 해 주고 꿈꾸게 한 과거의 나에게 너무너무 고마운 선택이다. 이때는 JAVA가 뭔지도 몰랐는데 1년 만에 현재 개발자로 일하며 설레는 매일을 보내고 있는 건 다시 생각해도 너무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교육을 듣는 7개월이 쉽지는 않았다. 그런데 또 나는 신기하게도 그 쉽지 않은 도전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 재밌었다..... 그래서 2월 마지막주부터 3월까지 자바에 포오오옥 빠져서 매일 4시간씩 자면서 공부만 했다. 그리고 JDK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개발 툴킷 Swing 만을 이용한 게임도 만들었다. 정말.......... 힘들고 지금 생각하면 다시는 쓰지 않을 것 같은 (물론 쓸 수도 있지만!) Jframe, JPanel 등의 흔치 않은 클래스들을 원 없이 썼던 것 같다.
이때 만들었던 게임은 코로나예방교육을 위한 어린이용 교육용 아케이드 게임인 '마스크 러쉬'이다. 어린아이가 가족을 위해 마스크를 구하러 다니는데, 실제로 게임 중 수돗가를 가서 주기적으로 손을 씻어줘야 하고, 마스크 없이 재채기를 하는 사람들 (몬스터로 등장시킴)을 피해서 마트와 약국을 들러 마스크를 사 오는 스토리를 만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웹은 아니지만 한 달 동안 엄청난 심혈을 기울인 만큼 굉장히 만족스러운 첫 작품이다.
(+ 개발도 개발이지만.... npc 들도 도트로 한 땀 한 땀 찍어내고 스토리텔링 만들고 피그마 프로토타입 만드는 건 엄청난 노가다였다... 그래도 이때 아니면 언제 게임을 만들어보겠어 라는 생각으로 영혼을 갈아 넣었다)
4월~5월
난 본격적으로 이때부턴 완전히 개발에 빠져버렸다.. 게임을 너무 열심히 만들어버린 덕(?)에 이후 스터디/프로젝트에서 줄곧 팀장 역할을 맡게 되었다. 난 컴퓨터공학 전공자도 아니었고 학원에 오기 전 공부를 탄탄히 하고 온 편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한번 빠져버린 개발의 세계에서 뒤처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과 열정을 200% 쏟았던 것 같다. 수업이 주 5일에 3시부터 10시까지였는데, 그전에 스터디를 하자고 11시까지 팀원들을 불러 모으고... 주말에도 디스코드로 접속해서 스터디를 했다. 중요한 건 이게 프로젝트가 아니라 스터디었기 때문에 그 시간들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프로젝트 구상을 했었다.... 게다가 스터디 전에 항상 문제 만들어오기 라든가 이론 빠삭하게 외워서 하나씩 강의해보기 등등의 과제를 내는 가혹한 아이디어를 내가 냈었는데......(왜 그랬을까) 그 준비를 하려면 새벽에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생각해도 미친 스케줄이지만 내가 뱉어놓은 규칙이라 꾸역꾸역 지키다가 결국 체력이 바닥났다. 이땐 미련하게도 거의 3주에 한 번씩 링거를 맞아가면서 멀쩡한 척 공부했다. '그래도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이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 나의 의욕을 함께 맞춰준 팀원들이 너무너무너무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하지만 우리 팀에 탈주자가 생겼을 땐 살짝.. 마음이 아프고 지금도 너무 힘들게 굴었던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하반기 회고록은 다음기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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